1,890원과 1,784원 사이 — 유가 '안정'이 가리키는 진짜 대상
안녕하십니까. 플라워 앤 이슈입니다.
지난 9월 2일, 저는 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리터당 1,890원을 결제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9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에 "국민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휘발유, 경유 등 정제유 가격은 계속 안정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결제한 1,890원과 대통령이 말한 '안정'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정부가 실제로 무엇을 '안정'시키고 있는지부터 구조를 뜯어봐야 합니다.
플라워의 프레임
▸ 표면 사건 : 대통령이 9월 12일 국내 유가 안정 지속을 공개 언급
▸ 핵심 수치 : 9차 석유 최고가격(8.22~9.18 적용) 도매 기준 휘발유 1,784원·경유 1,773원, 중동산 원유 비중 5월 54.1%
▸ 본질적 쟁점 : '안정'이 가리키는 대상이 도매 상한선인지, 제가 실제로 낸 1,890원인지
▸ 파급 경로 : 국제유가 → 정유사 공급가 신고 → 산업부 4주 단위 고시 → 주유소 판매가 → 가계 유류비
▸ 핵심 변수 : 9월 19일 예정된 10차 최고가격 조정 여부, 9월 30일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연장 여부
최고가격제가 '안정'시키는 것은 소비자가격이 아니라 도매 상한선입니다
정부는 2026년 3월 13일,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습니다. 이 제도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방식입니다. 1차 고시(3.13~3.26)는 휘발유 1,724원·경유 1,713원이었고, 국제유가 상승분과 유류세 인하폭 확대(휘발유 7%→15%, 경유 10%→25%)를 반영한 2차 고시(3.27~4.9)에서 휘발유 1,934원·경유 1,923원으로 210원씩 올랐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동결을 거쳐 6월 말 7차 고시에서 150원 인하되어 휘발유 1,784원·경유 1,773원이 됐고, 이 수치가 8차(7.25~8.21)와 9차(8.22~9.18)까지 세 번 연속 동결되며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가 9월 2일 주유한 시점은 정확히 이 9차 고시 적용 기간 안에 들어갑니다. 다만 이 1,784원은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일 뿐, 주유소가 운영비와 마진을 얹어 파는 소비자가와는 처음부터 차이가 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1,890원과 1,784원의 106원 차이가 말해주는 것
제가 낸 1,890원에서 9차 최고가격 도매 상한인 1,784원을 빼면 106원이 남습니다. 이 차액은 주유소의 운영비, 마진, 지역별 경쟁 상황이 만드는 구조적인 간격이지, 최고가격제가 실패했다는 신호는 아닙니다. 실제로 8차 고시 발표 당시 산업부도 "주유소 판매가격은 당분간 1,800원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어, 제가 낸 가격은 정부가 설계한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안정'이라는 표현이 '가격이 낮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상한선이 갑자기 뛰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7월 24일 산업부 발표를 보면, 국제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는데도 최고가격을 올리지 않고 동결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누적된 인상 요인을 스스로 떠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5월 21일 산업부 관계자는 "휘발유는 200원대 중후반, 경유는 300원대 중반의 누적 인상 억제분이 남아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즉 지금의 안정은 억제된 인상 요인이 어딘가에 쌓여 있는 상태의 안정입니다.
"중동 의존도 50%대로 낮췄다"는 표현은 방향은 맞지만 궤적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원유 중동 의존도를 70%에서 "몇 달 만에 50%대로 낮췄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약 69% 수준이던 중동산 원유 비중은 전쟁 발발 이후 4월 한때 50%선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5월 수치는 54.1%로, 전월(50.4%) 대비 오히려 3.7%포인트 올랐습니다. 5월에 중동산 도입량이 전월 대비 21.4% 늘어난 반면, 다변화를 이끌던 미국산 원유 도입량은 10.5% 줄었기 때문입니다. 7월 13일 산업부 자료에서는 1~5월 평균 중동산 비중을 69%에서 62%로 낮췄다고 밝혔고, 7월 30일 SK에너지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전쟁 이후 자사 기준 중동산 비중이 절반 미만으로 줄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종합하면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적 시도와 개별 정유사의 대응은 사실이지만, 국가 전체 수치가 매달 꾸준히 낮아지는 일직선 그래프는 아니었습니다. 4월에 급락했다가 5월에 다시 오르는 등락을 거쳐 현재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며, 대통령의 발언은 이 등락의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압축해서 전달한 셈입니다.
반론 : 그래도 제도가 급등을 막아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소비자가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는 반론은 타당합니다. 7월 24일 기준 국제유가가 100달러대로 오른 상황에서도 정부는 8차·9차 고시를 연속 동결했고, 그 결과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변동폭은 국제유가 변동폭보다 확연히 작았습니다. '누적 인상 억제분'이 쌓이고 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소비자 부담을 정부와 정유사가 대신 흡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제도의 실질적 효과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계 도달 지점
경로와 시차 —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주간 공급가를 한국석유공사에 신고하고, 산업부가 이를 반영해 4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산정합니다. 이번 9차 고시는 8월 22일부터 9월 18일까지 적용되며, 10차 고시는 9월 19일부터 새로 시작됩니다.
영향의 편차 — 경유차와 휘발유차의 체감이 다릅니다. 국제 경유가는 최근 배럴당 148달러에서 164달러까지 변동폭이 컸던 반면 휘발유는 상대적으로 완만해, 경유차 보유자의 부담이 더 클 수 있습니다.
확인 행동 — 다음 주유 전에 오피넷에서 거주 지역 평균가와 최고가격 고시 수치(도매가)를 나란히 놓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직접 비교해보시길 권합니다.
확인 창구 — 오피넷(opinet.co.kr)의 '오늘의 유가' 메뉴,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민생물가 특별관리 TF 발표).
오해 차단 — "유가가 안정된다"는 말을 "가격이 내려간다"로 이해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상한선이 유지된다"에 가깝고, 실제 하락은 국제유가가 뚜렷이 꺾이고 누적 인상 억제분이 해소돼야 가능합니다.
플라워의 판단
현재의 '안정'은 정부가 인상 요인을 억누르고 있는 구조 위에 서 있는 안정입니다. 9월 19일로 예정된 10차 최고가격 고시에서 인상이 결정되거나, 9월 30일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연장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안정'이라는 표현은 근거를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이번 주유 시점에는 1,890원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경유가 변동폭을 보면서 다음 고시가 나오는 시점에는 오피넷을 먼저 확인하고 주유 시점을 조정할 생각입니다.
플라워 앤 이의 한마디 — 안정은 숫자가 멈춘 상태가 아니라, 어디에 쌓여 있는지 아는 상태입니다.